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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5
중국 명사들의 에피소드 모음집, 대중문학의 신장르를 개척하다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는 명대(明代)의 문인인 왕세정(王世貞)(1526~1590)이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와 하양준(何良俊)(1506~1573)이 편찬한 ≪하씨어림(何氏語林)≫ 중에서 각각 일부분을 뽑아내어 합쳐서 만든 것이다.
≪세설신어≫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 유송(劉宋)의 유의경이 후한(後漢) 말부터 동진(東晉) 말까지 실존했던 명사(名士)들의 언행과 일화를 모아 주제별로 실어놓은 서적이다.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이 실제 생존했던 사람들이고 당시의 명사들이었기 때문에 ≪세설신어≫는 문인들의 애독서가 되었다.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세설신어》, 에피소드 문학의 원조가 되다
≪세설신어≫ 출현 이후 이 책의 서명, 체재, 문체 등을 모방한 속서(續書)들이 연이어 나왔다. 명나라 때 나온 ≪하씨어림≫과 ≪세설신어보≫도 속서 중의 하나이다. 왕세정은 ≪하씨어림≫에서 ‘전아(典雅)하고 순정(純正)[雅馴]’한 일화를 뽑아내어 ≪세설신어≫의 일화와 합쳐 다시 ≪세설신어보≫를 편찬하였다. 왕세정의 ≪세설신어보≫가 출현하자, 이 책의 인기는 원본 ≪세설신어≫를 능가하였다. 나아가 이 책에 비점(批點)을 찍고 주석을 더한 ≪이탁오비점세설신어보(李卓吾批點世說新語補)≫ 등의 비점본(批點本)들도 성행하게 되었다.
새로운 대중적 글쓰기, 고사성어(故事成語)의 보고(寶庫)
《세설신어》는 문학예술적 측면에서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과 같은 수사학적인 유미주의(唯美主義)가 극성을 부리던 당시 문학의 흐름에서 벗어나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획기적인 글쓰기로 작문되었다. 특히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사용하는 언어의 간결미와 함축미는 언어예술의 품격을 한층 더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세설신어》는 ‘등용문(登龍門)’, ‘난형난제(難兄難弟)’, ‘점입가경(漸入佳境)’ 등 수많은 고사를 담은 고사성어의 보고라 할만하다.
《세설신어》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하던 중국 고전소설의 흐름에 있어 ‘지인소설(志人小說)’이라는 독특한 유파를 정립함으로써, 근대까지 수많은 모방 작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세설체(世說體)’ 필기 소설로 존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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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의 전래
≪세설신어≫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최치원(崔致遠)(857~?)의 시 <봄날의 새벽에 우연히 쓰다[春曉偶書]>에서 ≪세설신어≫에 나오는 유령(劉伶)의 고사를 전고(典故)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인 900년 초에 국내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상에 ≪세설(世說)≫이라는 명칭이 처음 언급된 것은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인데, <동각 오세문이 고원의 여러 학사에게 드린 300운의 시에 차운하다[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三百韻詩]>라는 시에 이규보 자신이 주를 달아, “이 일은 ≪세설≫에 보인다.[事見世說]”라 하였다. 그의 연보에 따르면 이 시는 고려 명종(明宗) 25년(1195)에 지어졌으므로, 이때에 ≪세설신어≫가 우리나라에 존재하였다는 분명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설신어보≫의 초고속 조선유행
≪세설신어보≫는 선조 39년(1606)에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에 의해 전래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의현(李宜顯)이 ≪도곡집(陶谷集)≫에서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가지고 와서 서경(西坰)에게 증정하여 마침내 우리나라 문인들이 즐겨 보게 되었다.”라고 하였고, 허균(許筠)이 <세설산보주해서(世說刪補注解序)>에서 “병오년(1606, 선조39) 봄에 주태사(朱太史, 지번(之蕃))가 조서(詔書)를 받들고 우리나라에 왔는데 ?중략- 작별할 때 여러 종의 서적을 주었는데 이 책도 그중의 하나였다.”라고 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1606년에 우리나라에 전래 되었다면, 1586년에 왕세정의 ≪세설신어보≫가 민중(?中)에서 간행되어 나온 지 약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으니 얼마나 신속하게 이 책이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는지 알 수 있다.
≪역주 세설신어보≫ 완간의 의미
전통문화연구회가 모두 5책으로 발간한 ≪역주 세설신어보≫는 전통시대 우리나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세설신어보》를 고전번역 전문가들이 상세한 역주와 함께 완역하였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간행된 5책에는 《세설신어보》 37편부터 49편까지 모두 13편을 번역하여 실었고 부록으로 색인을 실었다. 관련 분야 전공자들이 연구 자료로 활용하기에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동양 고전에 관심 있는 지식 대중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책 속으로
상대의 의표를 찌르다
왕몽王蒙과 유담劉?은 평상시 채공蔡公(채모蔡謨)을 존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한번은 채공을 찾아가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는 이에 채공에게 물었다.
“공께서는 왕이보王夷甫(왕연王衍)와 비교해 어떠한지 스스로 말해 보시지요.”
<채공이> 답했다.
“나는 왕이보만 못하지요.”
왕몽과 유담이 서로 바라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공은 어떤 점이 못합니까?”
<채공이> 답했다.
“왕이보에게는 그대들 같은 손님이 없지요.”
- 37편 〈재치 넘치는 농담 하 排調 下〉 中에서
아들만 못한 아버지
장창오張蒼梧(장진張鎭)는 장빙張憑의 조부이다. <장창오가> 한번은 장빙의 부친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만 못하구나.”
장빙의 부친이 <그렇게 말한>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자 장창오가 말하였다.
“너에게는 훌륭한 아들이 있잖느냐.”
장빙은 그때 나이가 몇 살에 불과했는데 공수拱手하며 말하였다.
“할아버님, 어찌 자식을 가지고 아비를 놀리십니까.”
- 37편 〈재치 넘치는 농담 하 排調 下〉 中에서
졸작을 감춰주는 방법
서상시徐常侍(서릉徐陵)가 북제北齊에 사신으로 갔을 때 위수魏收의 문학文學이 북조北朝에서는 가장 뛰어났었다. 위수가 자신의 문집을 모아서 기록하여 서상시에게 보여주며 강좌江左에 전해 달라고 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서상시는 급히 강을 건너면서 문집을 물에 빠트리고는 말하였다.
“내가 위공魏公(위수)을 위해 <그의> 졸작을 감춰주었다.”
- 39편 〈업신여기고 헐뜯다 하 輕? 下〉 中에서
책임번역자 약력
金鎭玉
1959년 출생
西江大學校 史學科 碩士
高麗大學校 文學博士(고전번역)
民族文化推進會 國譯硏修院 상임연구부 졸업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前)
論著 및 譯書
論著 <≪世說新語≫에 대한 일고찰>, <조선 후기 官署志에 대한 고찰> 등
譯註書 ≪의금부의 청헌, 금오헌록≫ 등
共譯 ≪일성록≫, ≪정조실록≫ 등
공동번역자 약력
金泰勳
1971년 출생
高麗大學校 漢文學科 學士
高麗大學校 中語中文學科 碩士 修了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現)
譯書
共譯 ≪승정원일기≫, ≪신역 조선왕조실록≫
南誠佑
1969년 출생
高麗大學校 漢文學科 졸업
民族文化推進會(현 韓國古典飜譯院) 전문위원
民族文化推進會(현 韓國古典飜譯院) 부설 敎育硏修院 상임연구원(현 전문과정) 졸업
韓國古典飜譯院 표점교감팀 연구원
釜山大學校 점필재연구소 연구원
檀國大學校 동양학연구원 연구원
高麗大學校 한자한문연구소 연구원(現)
論著 및 譯書
譯書 ≪黃山遺藁≫, ≪桑韓唱和塤?集≫, ≪栢後遺集≫, ≪沔陽雜錄≫ 등
共譯 ≪金鼎奎日記≫, ≪使行錄≫, ≪石谷散稿≫, ≪承政院日記≫, ≪續陰晴史≫, ≪朝鮮王朝御冊:敎命?竹冊?金冊≫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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