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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삼경주소)맹자주소1
한국학과 동양학 연구의 미래, 삽삼경주소十三經注疏 번역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에서는 한국학 및 동양학 연구의 초석礎石으로서, 학계를 비롯하여 사회 각계의 요구에 따라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역주譯註 사업에 착수하였다. 동양사상의 원류原流라 할 수 있는 십삼경주소는 동양고전東洋古典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동아시아 사회를 이끈 학문과 문화의 보고寶庫였으며, 오늘날에도 수십억 세계인이 삶의 지침으로 존중하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소 개
≪맹자주소(孟子注疏)≫는 동한(東漢) 때 조기(趙岐)가 지은 고주(古注)인 ≪맹자장구(孟子章句)≫에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인 책이다. 모두 14권으로,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인에게 배우고,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후대에 아성(亞聖)으로 추앙을 받았다. ≪맹자≫는 본래 <양혜왕(梁惠王)>, <공손추(公孫丑)>, <등문공(?文公)>, <이루(離婁)>, <만장(萬章)>, <고자(告子)>, <진심(盡心)>의 7편으로 이루어졌다. 조기가 ≪맹자장구≫를 편찬하면서 각 편을 상하로 나누어 현재의 모습인 14편이 되었다. ≪맹자≫는 본래 ≪장자(莊子)≫, ≪순자(荀子)≫ 등과 같이 제자(諸子)로 분류된 책이었다. 이 책이 경서의 반열에 끼게 된 것은 남송 때 주희(朱熹)가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사서(四書)로 편정(編定)하면서부터이다. 이를 계기로 유가(儒家)를 대표하는 성인을 지칭할 때에 공자와 맹자를 병칭하게 되었다.
≪맹자주소≫의 저자에 대한 논란
남송(南宋) 때의 장서가인 진진손(陳振孫)(1186~1262)이 편찬한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에는 ≪맹자정의≫ 14권을 저록(著錄)하고 손석이 지었다고 기록하였다. 진진손이 이 목록을 편찬한 것은 손석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200여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직재서록해제≫의 기록은 당시에 ≪맹자주소≫의 저자가 손석이라고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맹자주소≫의 저자에 대한 논란은 진진손 당시부터 이미 있었다. 그보다 조금 앞서 살았던 주희(1130~1200)는 ≪맹자주소≫의 저자를 소무(邵武)의 어느 사인(士人)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도 주희의 주장을 인용한 뒤에, 손석이 저자가 아니라는 증거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주희와 ≪사고전서≫를 편찬했던 학자들이 이런 의심을 갖게 된 데에는 ≪맹자주소≫가 소(疏)가 가지는 일반적 체례를 지니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손석은 수준 높은 저술을 다수 남긴 당대의 박식한 학자였다. 하지만 ≪맹자주소≫의 내용이 이러한 대학자에게서 기대할 만한 수준에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여타 문헌에서도 손석의 저술로 ≪맹자주소≫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손석을 가탁하여 다른 사람이 지은 책이라고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맹자주소제사해(孟子注疏題辭解)≫의 소문(疏文)에 “황조(皇朝)의 ≪숭문총목(崇文總目)≫에 이르면, ≪맹자≫는 조기가 주를 단 14권과 당나라 육선경(陸善經)이 주를 단 ≪맹자≫ 7권만 남아 총 2가(家) 21권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구절은 ≪맹자주소≫의 저자가 손석이 아니라는 증거의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숭문총목≫은 송나라 때 편찬된 관찬목록으로, 1041년에 완성되었다. ≪맹자주소제사해≫의 소문의 말은 ≪맹자주소≫의 저자가 ≪숭문총목≫을 보고 기록한 것이니, ≪맹자주소≫는 1042년 이후에 저작된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손석은 1033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맹자주소제사해≫ 소문의 해당 구절이 후인이 첨가한 것이 아닌 이상, 손석이 ≪맹자주소≫의 저자가 될 수 없는 사실이 명백하다.
≪맹자주소≫의 가치와 영향
저자에 대한 논란과 관련하여 ≪맹자주소≫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어왔다. 하지만 ≪맹자주소≫의 학술적, 역사적 가치는 적지 않다.
송대 이전의 ≪맹자≫는 경서가 아니었으므로 연구하는 학자가 많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조기의 ≪맹자장구≫ 이후 주석서로는 동한 때 정현(鄭玄)의 ≪맹자주(孟子注)≫, 유희(劉熙)의 ≪맹자주≫, 양(梁)나라 때 기무수(?毋邃)의 ≪맹자주≫, 당(唐)나라 때 육선경의 ≪맹자주≫, 장일(張鎰)의 ≪맹자음의(孟子音義)≫, 정공저(丁公著)의 ≪맹자수음(孟子手音)≫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다양한 주석서가 풍부하게 산출된 오경과 같은 경서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다. 이러한 쉽지 않은 여건에서 나온 ≪맹자주소≫이기에 그 가치는 더욱 높게 평가 받을 만하다. 주석서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맹자주소≫ 정도의 주석서가 출현한 사실만 하더라도 맹자학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또한 맹자가 송나라 때에 이르러 경서의 지위에 올라 “십삼경”의 구성을 완성했으며, “십삼경주소”의 형태로 간행되어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희는 ≪맹자주소≫에 대해 “기존 소(疏)의 형식과 전혀 달라서 명물제도(名物制度)에 대한 풀이를 하지 않고, 단지 조기의 설에 부연만 했을 뿐이다.”라고 폄하한 바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맹자주소≫의 소는 기존 주소의 방식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소체의 규범에 부합하고 있으며, 상당히 엄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내용을 보면 비록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한 것은 많지 않지만, 설명이 쉽고 유창하고 명확하여 초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맹자주소≫는 글자와 어구의 해석에 있어 비판을 받은 부분도 적지 않지만, 정밀한 해석으로 다른 주석가들이 발명하지 못한 부분을 정확하게 밝힌 부분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이루장구하>의 “天下之言性也 則故而已矣”에 대한 풀이이다. 이 부분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구절인데, 조기, 주희, 초순焦循 등도 원만한 해설을 내놓지 못한 반면에, ≪맹자주소≫는 ‘故’자를 ‘事’자로 풀이하고 명쾌한 설명을 하여 독자들이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하였다.
역자 소개
최채기 崔彩基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연수부, 상임연구부) 졸업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現)
논문 및 역서
<退溪 李滉의 朱子書節要 編纂과 그 刊行에 관한 硏究>, <圃隱集의 編纂과 刊行에 관한 硏究>, <한국에서의 朱子文集 수용방식> 등
≪拙藁千百≫, ≪記言≫(공역), ≪明齋遺稿≫(공역), ≪弘齋全書≫(공역), ≪星湖全集≫(공역) 등
양기정 梁基正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연수부 졸업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현)
논문 및 역서
<禮記類編의 編刊과 毁板?火書에 관한 연구>, <正祖의 當代 臣僚 文集 命刊에 대한 연구>, <한국고전번역원 출간 한문번역 관련 공구서 현황과 과제> 등
≪明齋遺稿≫(공역), ≪星湖全集≫(공역), ≪樊巖集≫(공역), ≪南冥集校注≫ 등
目 次
東洋古典現代化와 十三經注疏 譯註
解 題
凡 例
參考文獻
欽定四庫全書總目 孟子正義十四卷 / 13
孟子正義序 / 22
孟子注疏題辭解 / 25
卷第一 上 梁惠王章句 上 / 87
卷第一 下 梁惠王章句 上 / 140
卷第二 上 梁惠王章句 下 / 185
卷第二 下 梁惠王章句 下 / 257
附 錄
1. ≪孟子注疏1≫ 圖版目錄 / 319
2. ≪孟子注疏≫ 總目次 / 3231
3. ≪孟子全圖≫(QR코드) / 323
4. 全國七雄圖(中國歷史地圖)(QR코드)/ 342
5. ≪孟子≫ 관련 參考資料(QR코드) /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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