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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제작도서 예기집설대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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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禮記≫ - 동양 예문화禮文化의 정수를 만나다 -
동양 문화의 특징을 예문화禮文化라고 한다. ≪예기≫는 예禮에 관한 총체적 설명을 한 책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유교儒敎의 경서經書로 자리매김하였고, ≪의례儀禮≫?≪주례周禮≫와 함께 ‘삼례三禮’라 불린다. ≪예기≫는 대체로 서한西漢 선제宣帝 시기에 활동했던 대성戴聖이 당시까지 전래한 예에 관한 기록을 모아 편찬하였다고 전한다. 본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읽힌 명明나라의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을 저본으로 집설集說과 대전大全까지 모두 번역하고 주석하였다.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 - ≪예기≫를 읽는 시선을 종합하다 -
≪예기≫를 이해하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이다. 중국 한대漢代의 인식을 충실히 계승한 정현鄭玄?공영달孔穎達의 주석과 송대宋代 이학理學의 혁신적인 주석이 그것이다. 고대古代의 전장제도典章制度에 정통한 정현의 주석은 예제禮制로서의 ≪예기≫ 이해를 깊이 있게 해준다. 반면 예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탐색을 시도한 송유宋儒의 주석은 ≪예기≫가 어떻게 동양의 사고思考를 지배하였는지 잘 보여준다. 두 가지 주석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면 예의 본령을 이해할 수 있다.
≪예기집설禮記集說≫은 이 점에 착안하였다. 정현의 고주古註와 송유宋儒의 신해석新解釋을 적절히 배치한 것이 바로 원元나라 진호陳澔의 ≪예기집설≫이다. 그러나 너무 간략하였다. ≪예기집설≫의 단점을 보완하여 송宋은 물론 원元나라 학자들의 주요 주석까지를 채록하고 심도 있는 이해를 시도한 것이 명나라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이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불린 우리나라
≪예기≫는 다른 유교 경전보다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이 크다. 조선의 학자들은 예학에 관한 다양한 저술을 남겼고, 명문가에는 으레 그 집안의 가례家禮가 존재한다. 우리나라가 예학에 밝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의 인식 속에 있었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해 뜨는 동방의 예의지국禮儀之國 또는 군자국君子國이라 불렀다. 이보다 앞서 선진先秦 시기의 공자孔子도 예의의 나라 동쪽으로 가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 민족문화의 정체성에는 이처럼 오래전부터 예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예기≫는 일찍부터 삼국시대 국학國學에서도 주요 교과목으로 채택되어,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372)에 태학太學을 만들어 ≪예기≫를 가르쳤다고 하였다. 신라 원성왕元聖王 4년(788)에는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설치하여 ≪예기≫를 필수교과로 채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사기日本史記≫에도 백제 무령왕武寧王 13년(513)에 백제에서 오경박사五經博士 단양이段楊爾를 일본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보이며, 신라 화랑 청년들의 맹서를 새긴 비석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도 ≪예기≫를 중요한 서적으로 인식하고 공부했다는 기록이 있다.
‘예禮’는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문화에 자리 잡은 고유한 특징으로, 본서 ≪역주 예기집설대전≫을 통해 예에 대한 이해에 한걸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예기집설대전≫는 총 10책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책 속으로
【예禮란 근본을 잊지 않는 것】
태공太公이 영구營丘에 봉해졌지만 <계속 주周나라에 머물러 벼슬하다가 죽었으므로> 그 후 5대代에 이르기까지 그 자손들이 주나라로 돌아가서 장사葬事를 지냈다.
군자가 말하였다. “악樂은 말미암아 태어난 바를 즐거워하는 것이고, 예禮는 그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바르게 해서 고향 언덕을 향하는 것은 인仁이다.’라고 하였다.”
- <단궁檀弓 상上> 중에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가혹한 정치가 범보다 사납다】
공자孔子께서 태산泰山 옆을 지날 적에 어떤 부인이 무덤에서 곡哭을 하며 슬퍼하고 있자, 자로子路에게 슬피 우는 까닭을 물어보게 하였다. 자로가 물었다. “당신의 곡소리가 대단히 심한 걱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인이 대답하였다. “그렇소이다. 옛날에 내 시아버님께서 범에게 물려 돌아가셨으며 내 남편도 범에게 물려 죽었는데, 이번에는 내 자식이 범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째서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까?” 부인이 대답하였다.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자小子들아. 이것을 기억해두어라. 가혹한 정치가 범보다 더 사나운 것이다.”
- <단궁檀弓 하下> 중에서
【예법禮法을 따라 올바름을 얻고 죽다】
동자童子가 말하였다. “화려하고 고우니 대부大夫의 대자리일 것입니다.” 증자曾子가 말하였다. “그러하다. 이는 계손씨季孫氏가 준 것인데 내가 바꾸지 못하였으니, 증원曾元은 일어나서 대자리를 바꾸거라.” 증원이 대답하였다. “아버님의 병이 심하여 바꿀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내일 아침에 공경히 바꾸겠습니다.” 증자가 말하였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저 동자만도 못하구나. 군자가 사람을 사랑함은 덕德으로 하고, 소인이 사람을 사랑함은 임시방편[姑息]으로 하니, 내 무엇을 바라겠느냐? 내 바름을 얻고 죽으면 그만이다.”
이에 증자를 부축하여 자리를 바꾸었는데, 자리로 돌아와 편안해지기도 전에 운명하였다.
- <단궁檀弓 하下> 중에서
역자 소개
공동번역共同飜譯
오규근吳圭根
강원江原 평창平昌 대화大化 출생
남산南山 정찬鄭鑽 선생, 조부祖父 봉서鳳西 선생, 가친家親 연청硏靑 선생에게 수학
민족문화추진회民族文化推進會 국역연수원國譯硏修院 졸업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고전연수원古典硏修院 강사講師 역임
전통문화연구회 이사理事(現)
譯書 조선왕조실록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中宗實錄≫
≪白湖全書≫, ≪順庵集≫, ≪承政院日記≫(高宗祖) 등 다수
함현찬咸賢贊
성균관대成均館大 동양철학과東洋哲學科 졸업
성균관대 대학원 유학과儒學科 박사과정博士課程 졸업(철학박사哲學博士)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BK21+ 사업단 연구교수
성균관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現)
論文 및 譯書
論文 <張載氣哲學의 天人合一的人性論硏究>
<韓元震人性論에 나타난 性槪念의 特徵에 대한 小考> 등 다수
譯書 ≪敎授用指導書四字小學≫, ≪敎授用指導書擊蒙要訣≫, ≪孟子≫, ≪論語≫ 등 다수
정병섭鄭秉燮
성균관대成均館大 유학철학과儒敎哲學科 졸업
성균관대 대학원 유학과儒學科 박사과정博士課程 졸업(철학박사哲學博士)
성균관대 유경편찬센터 번역?표점위원
전북대全北大 간재학연구소 번역위원
성균관대 유교문화콘텐츠연구소 전임연구원(現)
論文 및 譯書
論文 <≪禮記≫의 성립과 사상체계 연구> 등 다수
譯書 ≪譯註 禮記集說大全≫, ≪譯註 禮記補註≫, ≪韓國周易大全≫
≪東賢學則≫, ≪孝經注疏≫, ≪譯註禮記類編大全≫ 등 다수
목 차
ㆍ東洋古典譯註叢書를 발간하면서
ㆍ凡 例
檀弓 上 第3 ………………………………… 9
檀弓 下 第4 ………………………………… 206
附 錄
ㆍ≪禮記集說大全2≫ 參考書目 / 371
ㆍ≪禮記集說大全2≫ 參考圖版 目錄 및 出處 /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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