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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훈의)자치통감강목 4
세종대왕과 그 학사들이 주석한 사정전훈의본思政殿訓義本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은 성리학性理學에 입각한 정통론적 입장에서 쓰인 강목체綱目體 사서史書로 조선시대 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논의, 평가, 서술에 있어서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이는 조선시대 임금들이 경연經筵에서 읽던 대표적 역사서로 이와 관련된 내용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자치통감강목≫을 중시했던 세종은 이 책을 무려 100독을 하였으며, 역사에 뛰어난 대신大臣들과 학사學士들에게 명하여 이 책과 관련된 서적을 모아서 연구하여 주석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사정전훈의본 ≪자치통감강목≫이다. 사정전思政殿은 경복궁景福宮의 편전便殿으로 바로 세종대왕을 상징하는 것이고, 훈의訓義는 ‘의미를 해석한다.’는 뜻으로, ‘훈의’는 바로 ≪자치통감강목≫의 주석을 가리킨다.
서거정徐居正은 훈의訓義에 대해, 당시 중국의 여러 서책을 참조하였으며 글자의 음과 해석, 구두句讀까지 상세히 갖추었는데, 이는 모두 세종대왕의 재량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정밀함은 고금에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한 무제漢武帝, 화려한 삶을 꿈꿨던 비운의 황제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4≫에서는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전성 시기에서 그의 말년 삶을 주로 서술하고 있다. 한 무제의 시대는 한나라의 가장 화려한 시기로 평가되는데, 특히 북방 유목제국인 흉노匈奴와의 전쟁에서 그의 명장인 위청衛靑, 곽거병의 활약을 통해 승리하였으며, 장건張騫의 활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단길이 개척되었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아 재정이 궁핍해지면서 경제적으로 염철전매鹽鐵專賣 같은 경제 정책을 시행하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유학儒學을 관학화官學化하는 정책 등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후대 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혹리酷吏들을 고용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그 말년의 비극을 가져오게 된다. ≪자치통감강목≫의 강綱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황제가 감천甘泉에 갔다. 가을 7월에 황태자皇太子 유거劉據가 사자使者 강충江充을 죽이고[殺]는 황후皇后에게 아뢰고 군대를 출동시켜 반란을 일으키자, 승상丞相 유굴리劉屈氂에게 명하여 토벌하게 하였다. 유거가 패하여 호현湖縣으로 달아났었는데, 황후 위씨衛氏와 유거가 모두 자살하였다.”
강綱은 해당 사건에 대한 사건을 요약하여 서술한 것으로 거기에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입각한 역사적 평가(포폄褒貶)가 담겨져 있다. 즉 “사자使者”와 “죽였다[殺]”라고 쓴 것은 무제의 지시가 있은 것이니 무제의 잘못을 드러낸 것이고 “반란”과 “토벌”은 황태자의 잘못을 징계한 부분이다. 이렇게 사건의 서술 앞에 함축적 문장으로 그 사건으로 평가하고 그 사건의 전말은 강綱 아래 목目에서 구체적으로 서술을 하였다.
그리고 그 목의 내용을 읽어보면, 간신인 강충의 무고誣告에 의해 자신의 아들을 죽인 무제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죽인 영조英祖의 모습과 겹쳐지게 된다. 그리고 위대한 황제 무제 역시 결국 노년의 자식을 잃은 한 인간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사마광司馬光은 한 무제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무제가 매우 사치스럽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고 세금을 무겁게 거두었으며……이런 점에서 진 시황秦始皇과 별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진秦나라는 망하고 한漢나라는 흥한 것은 무제가 능히 선왕의 도를 지키고 충직한 사람의 말을 받아들여 속이고 엄폐하는 것을 미워하였으며, 현자들을 좋아하였고 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이처럼 ≪자치통감강목≫은 사건의 포폄과 그 전말 그리고 사평史評까지 포괄하여 서술한 역사서이다.
강목綱目과 훈의訓義의 국내 최초 완역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는 모두 35책으로 간행될 예정이다. 본서는 원본의 편집 체제의 특징을 그대로 구현하고자 하였으며, 번역문은 현대적으로 표현하여 일반 독자들이 번역문만 읽어도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번역문 아래 원문을 함께 실어놓았으며 원문에는 원문의 문장구조를 한국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우리나라 전통적 방식의 현토懸吐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감을 하여 학술적 연구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또한 본서는 ≪자치통감강목≫과 그 주석을 국내 최초로 번역하였다. 거기다 사정전훈의본 ≪자치통감≫ 및 한중일韓中日에서 나온 ≪자치통감≫ 연구서 등을 참조하여 고사故事와 인물人物, 역사적 사실과 제도까지 역주譯註로 밝혀 독자들의 내용 이해를 도왔다. 또한 역사 사건과 관련된 역사연표, 역사지도, 한 무제의 가계도를 부록하였다.
≪자치통감≫은 현재 중국, 일본, 한국에서 번역되었으나 주석까지 완역完譯되지는 못하였고, 그뿐 아니라 ≪자치통감강목≫은 번역도 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번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주석서인 사정전훈의본 ≪자치통감강목≫의 완역을 통해 기존에 잊혔던 세종 시기의 연구 성과를 알리는 동시에 동양학과 한국학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책임번역자 약력
成百曉
忠南 禮山 出生
家庭에서 父親 月山公으로부터 漢文 修學
月谷 黃璟淵, 瑞巖 金熙鎭 先生 師事
民族文化推進會 國譯硏修院 修了
高麗大學校 敎育大學院 漢文敎育科 修了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名譽漢學敎授(現)
傳統文化硏究會 副會長(現) 해동경사연구소 소장(現)
古典國譯賞 受賞
論文 및 譯書
<艮齋의 性理說小考> <燕岩의 學問思想硏究>
四書集註 ≪詩經集傳≫ ≪書經集傳≫ ≪周易傳義≫
≪古文眞寶≫ ≪牛溪集≫ 등 數十種 國譯
≪宣祖實錄≫ ≪宋子大全≫ ≪茶山集≫ ≪退溪集≫ 등 共譯
공동번역자 약력
李鍾德
忠南 牙山 出生
兢庵 金淵雷 先生 師事
民族文化推進會 國譯硏修院 수료
高麗大學校 敎育大學院 漢文敎育科 수료
高麗大學校 中央圖書館 漢籍室
國史編纂委員會 古典硏究委員
成均館 翰林院 교수
傳統文化硏究會, 成均館大學校 社會敎育院, 韓國古典飜譯院 國譯硏修院 강사
延世大學校 國學硏究院 강사 및 諮問委員
譯書
≪荷齋日記≫ ≪愚山經義問答≫ ≪備邊司謄錄≫ 등 共譯
尹銀淑
德成女子大學校 經營學科 졸업
放送通信大學校 中文學科 졸업
仁川永化女子高等學校 敎師
民族文化推進會(現 古典飜譯院) 硏修部 및 一般硏究部 卒業
海東經史硏究所 硏究委員(現)
潤文
≪孫武子 吳子直解≫ ≪六韜 三略直解≫ ≪司馬法直解≫ ≪陶谷集≫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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